조선시대 존재감 없는 제13대 왕 명종
조선시대 13대 명종 이환은 제11대 중종의 두 번째 적자로 어머니는 문정왕후 윤 씨입니다.
인종이 후사를 두지 못하고 1년이란 시간도 되지 않은 채 승하하여 이복동생인 경원대군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가 바로 조선 제13대 임금 명종입니다. 명종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합니다. 당시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는 조선 최고의 치맛바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하여 동생 윤원형과 그의 첩인 정난정의 도움을 받아서
인종을 지지했던 대윤파와 맞서 싸워서 아들을 지켜냅니다. 중종의 두 부인인 정경 왕후와 문정왕후는 모두 파평 윤 씨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윤임을 비롯하여 장경왕후의 친정 세력을 대윤, 윤원형을 비롯한 문정왕후의 친정 세력을 소윤이라고 구분하여 불렀습니다. 하지만 인종이 일찍 죽고 명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드디어 기다리면 문정왕후와 소윤파의 세상이 됩니다. 한마디로 문정왕후가 왕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문정왕후는 그동안 당했던 서러움을 갚아주기 위하여 소윤 세력 즉 문정왕후는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을사사화입니다. 소윤파 정순붕이 대윤파를 몰아내기 위하여 상소문을 올리는데
이를 본 문정왕후에게는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명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소윤파 세력과 함께 대윤파 세력을 모두 숙청합니다.
임금 위에 군림한 여왕 문정왕후 그리고 불교에 대한 사랑
임금은 명종이었지만 명종은 너무 어렸고 실질적인 나라의 왕은 문정왕후였습니다.
나라의 중요 대사와 권력들을 모두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녀에 대항하는 순간 그 누구라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습니다.
문정왕후는 명종이 즉위한 후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고 그 이후에 물러나도 그녀의 힘은 죽는 그날까지 강력했습니다.
그녀의 동생인 윤원형을 그녀를 믿고 온갖 악행과 비리를 저지릅니다. 그런데도 임금인 명종조차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방관을 합니다. 조선은 유교를 기초로 하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문정왕후는 남몰래 불교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조선왕실 중에서 불교에 대한 사랑을 가장 많이 보여준 사람을
한 사람만 뽑으라면 문정왕후였습니다. 문정왕후는 불교를 장려하기 위해 도첩제를 시행합니다. 그리고
전국에 300개가 넘는 절을 만들기도 합니다. 도첩제란 출가한 승려에게 국가가 발급해주는 허가증 같은 겁니다.
당시 명종의 시기에는 도첩제가 폐지되었던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당시 스님들은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정왕후가 다시 도첩제를 부활시키므로 스님들의 지위를 찾아준 거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전국에 있는 유생들이 반발하고 들고일어납니다. 당시 이를 반대하는 상소가 정말 많았습니다.
당시 왕은 명종이었지만 실질적인 왕은 문정왕후였기 때문에 문정왕후가 살아 있는 명종 재위 20년 동안 불교 장려 정책은 계속됩니다. 또 이러한 정책을 통하여 특이하게 먼 훗날 임진왜란이 발생할 때 활약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이때 발탁되었습니다. 문정왕후의 불교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죽을 때까지 그리고 유언으로 까지 불교 장려를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조선시대 불교의 최전성기가 바로 문정왕후가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녀가 죽고 불교는 찬밥이 되었습니다.
임꺽정의 난 그리고 후사가 없는 죽음
명종의 재위 기간 22년 동안에 나라는 안팎으로 혼란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안으로는 왕실 외척의 폭정이 심각했고
밖으로는 탐관오리들이 득세하여 세금을 많이 징수하고 각종 사건사고 비리가 난무했습니다. 또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티브이에서 또는 책에서 봤던 임꺽정의 난도 이대 일어났습니다. 조선에서 일어난 수많은 난중에서 꽤 장기적으로 지속이 됩니다. 어느 정도냐면 조선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임꺽정의 활동은 황해도를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납니다. 당시 임꺽정은 갈 때를 엮어 생활도구를 만들어 파는 일을 하여 먹고살았는데 나라가 당시 얼마나 경제가 어려웠으면 이 갈대를 돈을 주고 사는 지경에 이릅니다. 길가에서 자라는 풀을 돈을 주고 산다니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다못한 임꺽정이 난을 일으킵니다. 이에 대응하여 조선의 정부는 황해도 각 지역을 강화하고 많은 수의 병력을 동원해 임꺽정을 토벌하고자 했습니다. 임꺽정은 잘 맞서 싸우다가 임꺽정의 모사였던 서림이라는 자가 체포되어 관군에 가담하여 임꺽정의 약점을 파고들었습니다. 결국 1562년 1월에 임꺽정은 체포되어 죽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썩을 때로 썩은 조선사회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고 반란은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는 와중에 명종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외아들 순회 세자가 있었으나 일찍이 죽고 다음 왕위를 중종과 후궁 사이에 태어난 자손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즉 중종의 손자 중에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다음 시간에 이야기할 선조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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