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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역사

조선시대 제4대 세종 이도에 관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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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 성군 제4대 왕 세종

조선시대 대표 성군 제4대 왕 세종의 제위기간은 32년입니다. 이것은 조선의 왕들 중에서 7번째로 재위 기간이 깁니다. 세종은 굉장히 오랫동안 왕위에 머무르고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세종을 존경하고 최고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라고도 불립니다. 세종이 왜 이렇게 존경받고 우리나라의 대표 왕 중에서 한 명이 되었을까요? 훈민정음을 창제, 아니면 다양한 업적들 때문일까요? 물론 이러한 것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백성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 애민정신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세종은 사람 즉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척 컸습니다. 그래서 세종을 한마디로 예민 군주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세종은 백성과의 소통을 중시 여겨 조선 최초의 여론조사를 시행하였습니다.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정말 혁신적인 것입니다. 나라를 운영하려면 세금이 정말 중요합니다. 세금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 해 농사로 얻은 수확량의 일부를 내는 전세가 있었습니다. 세종은 이 전세에 대해 공법이라는 제도를 시행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얘기를 하면 형평성을 생각하여 세금을 거둬들였습니다. 그리고 공법을 정할 대도 무조건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여론조사를 하여 다양한 의견을 수렴 후 토표 후  정하였습니다. 투표 방식조차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일이 사람을 시켜서 물어보는 방법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세종이 얼마나 나라를 정당하고 공평하게 운영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에 대하여 더 자세한 링크!!!

 

조선 왕중 최초로 약자의 편에 섰던 임금

조선 왕중 최초로 약자의 편에 섰던 임금이 바로 세종입니다.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사회였습니다. 한 번 태어나면 신분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당시에 노비의 경우는 어디 가서 사람 취급도 못 받았습니다. 국가의 소속인 관노비와 개인 노비인 사노비 모두 하루 종일 엄청난 양의 노동에 시달렸으며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도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세종은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계층을 편애하지 않고 노비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혜택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출산 휴가 100일을 준 것입니다. 그전에는 노비들이 출산을 하면 7일이 전부였는데 이것은 정말 충격 그 자체의 정책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를 하여서 출산 1개월 전부터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해 줍니다. 그전에는 노비들은 일하다가도 밭일을 하다가도 아이를 낳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또 충격적인 것은 남자 노비에게도 육아휴가제도를 준 것입니다. 이것 도한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면 혁신적인 제도인 것입니다. 이렇게 세종이 노비에게도 이렇게 덕을 베푼 것은 노비 역시 선비나 똑같은 사람이고 백성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를 보면 세종을 성군이라 칭송하는 것은 정말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종 이후 왕 중에 이렇게 까지 약자의 편에 섰던 임금은 두 번 다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독서광이자 한글 창조자 세종

세종은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한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몸살로 열이 심하게 날 때 다쳤을 때도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이 세종이 아픈 순간에도 독서를 계속하자 태종이 너무 걱정되고 화가 나서 세종의 책을 모두 거둬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렇지만 세종은 병풍 사이에 책을 한 권 발견하고 그 책 1권을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나중에는 시력도 엄청 안 좋아집니다. 그런 상황에도 세종은 책을 놓지 않고 읽었습니다. 세종의 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백성만큼 소중히 여겼던 것 같습니다. 또 세종 하면 조선시대 유일무이한 한글 창제를 했습니다. 훈민정음이라고도 말하기도 합니다. 둘 다 우리글을 가리키는 용어지만 한글은 1910년대 주시경 선생을 비롯하여 한글학자들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백성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지배층들의 반대가 엄청했습니다. 왜냐하면 글을 읽고 쓰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특권이자 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은 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백성들은 글을 몰라 학문을 배울 수도 없고 그것으로 인하여 어리석음으로 죄를 저지르는 게 싫었습니다. 세종은 백성들이 평등하게 책을 읽고 학문에 전념하여 세상 이치를 깨달아 올바르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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