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북벌 정책 제17대 왕 효종
조선시대 제17대 왕 효종은 인조의 차남으로 병자호란 이후에 형인 소현 제사와 함께 청나라에서 인질 생활을 합니다.
당시에는 봉림대군이었습니다. 봉림대군은 형과 달리 청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청나라에 대한 복수가 분노를 가지고 인질생활을 끝내고 조선으로 귀국합니다. 이러한 모습에 인조는 봉림대군을 무척 좋아합니다.
봉림대군은 항상 마음속에 북벌을 품고 살았습니다. 북벌이란 북쪽을 정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북쪽은 청나라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봉림대군은 효종으로 즉위하자 아버지와 나라의 굴욕을 복수하기 위해 북벌 운동을 시행합니다.
당시의 집권 세력인 서인과 함께합니다. 효종은 말로만 북벌을 외치는 것이 아닌 준비로 철저히 합니다. 북벌 정책을 퍼뜨리기 위해 다양한 인재를 등용합니다. 대표적으로 송시열과 송준길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장차 서인의 핵심인물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어영청이라는 부대를 정비하고 확대합니다.
이완 장군을 어영청의 대장으로 임명하고 북벌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합니다. 그리고 남한산성을 더욱 방어하기 위하여
수어청의 기구를 확대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효종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리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백성들이 전쟁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1592~1598년 7년 동안 임진왜란 그리고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 연이은 전쟁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강한 의지의 효종과 하멜표류기
효종은 연이은 전쟁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지만 북벌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송시열을 통해 북벌을 대대적으로 실행하려고 하였으나 송시열조차도 북벌 정책에 크게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송시열은 겉으로는 북벌해야 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나라 경제와 백성의 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청나라는 계속해서 성장하여 전성기를 맞이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북벌 정책을 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의 수준이었습니다. 효종의 삶의 이유와 사명이 북벌일지라도 현실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그리고 당시 효종의 시대에는 동서양의 만남과 신대륙의 문물의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 일본과만
교류를 하고 서양과는 교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미있는 일이 생깁니다. 네덜란드 상인들이 일본으로 가던 중 필리핀 남부에서 태풍에 휘말린 것입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일본이 아닌 제주도에 표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 제일 먼저 표류한 서양인이 바로 네덜란드인 벨테 브레이입니다.(인조 때)
당시 조선은 서양인이 들어오면 절대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벨테브레이를 서울로 호송해 옵니다.
조선은 그에게 서양의 무기 제작법을 알려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최고 부대였던 훈련도감에서 일하게 됩니다. 벨테브레이를 도망가지 못하게 조선 여자와 혼인을 시킵니다. 거기다 아이까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처자식을 두고 도망갈 수가 없어 박연이라 이름을 바꾸고 조선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상인들이 또 제주도에 표류하게 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하멜 일행입니다. 하멜은 1656년~1666년 14년 동안 조선에서 지냅니다.
이때가 효종 때입니다. 근데 우연히도 하멜과 박연이 한양에서 딱 만나게 됩니다. 근데 너무 웃긴 게 박연이 하멜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네덜란드 말을 다 까먹은 겁니다. 물론 말도 까먹었지만 그보다도 만감이 교차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놀라움, 반가움, 서러움, 복받침 등의 수많은 감정이 엉켜서 말입니다.
하멜은 조선에서 노역 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일본으로 도망갑니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갑니다.
귀국한 그 연도에 하멜표류기를 발간합니다.
하멜표류기는 조선의 지리와 풍속, 정치, 군사, 교역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책입니다.
효종의 이루지 못한 북벌과 허무한 죽음
효종이 북벌을 위해 그렇게 애써 키운 군사들은 당시 청나라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조선에게
2차례에 걸쳐서 군대를 차출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청나라를 치기 위해 육성한 군사를 정작 청나라를 치지 못하고
도와주며 청과 함께 러시아를 공격하게 됩니다. 적을 치기 위해 키운 군사들을 적을 돕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게 되고 효종도 나이가 들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맞이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효종의 얼굴에 작은 종기가 돋았는데 그게 좀처럼 잘 낫질 않은 것입니다.
얼굴에 종기가 났으니 당연히 독을 짜야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걸로 또 2개의 파가 나뉘게 됩니다.
임금에 얼굴에 침을 놓을 수 없다는 입장과 그래도 건강이 우선이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참으로 종기를 짜게 됩니다. 근데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종기를 짰는데 피가 도무지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과다출혈로 인하여 얼굴의 작은 종기 하나 대문에 효종은 세상을 떠납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은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효종의 북벌 의지가 이렇게 꺾이니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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